
롱블랙 프렌즈 B
“십만 개의 물방울을 그리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이런 종류의 예속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단순히 인내심이 필요할까. 엄청난 야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조금 미쳤을까?”
_김오안(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에서
50년간 오직 물방울만 그린 남자가 있습니다. 캔버스에 물을 뿌려 그림을 지우고 재사용하던 시절부터, 그림 한 점이 십억 원에 팔리던 시절에도. 고故 김창열 화백은 수도승처럼 물방울을 그렸어요.
왜 그렇게까지 그려야 했을까요. 아들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그 마음에, 가닿아 보려 합니다.

설원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김창열은 김창열입니다. 한국 미술사의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아요. 오랜 시간 프랑스에서 활동한 그의 그림은 “동양적이지 않은 무엇과 서양적이지 않은 무엇이 공존한다”는 평을 받습니다.
물방울이라는 그만의 언어를 가졌기 때문이죠. 그가 그려낸 물방울은 한없이 투명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화백에게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었어요. 살바도르 달리가 직접 전시를 찾았으며,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그의 물방울 그림을 소장했죠.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에겐 BTS의 RM이 소장한 그림으로 유명해요.
하지만 저는 물방울에서 김창열의 고통을 봐요. 그건 총상을 입은 친우의 살갗에 흐르던 피였고, 탱크가 지나간 자리에 흩어진 사람들의 내장이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녹이기 위해, 물방울을 그린다”던 화백의 고백처럼, 그 속에 녹아든 분노와 슬픔, 공포, 그리움을 알알이 살펴보겠습니다.